황석산성전투

황석산성전투

정유재란 때 경상도 안음현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왜군과 벌인 전투이다.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병력을 총동원하여 다시 조선을 공격하였다. 1597년(선조 30) 8월 16일 가토(加藤淸正)ㆍ구로다(黑田長政) 등 적의 맹장들은 황석산성에 도착하여 수만의 군사로 성을 공략하였다.
당시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은 황석산성이 호남과 영남의 길목이 되므로 왜군이 반드시 차지하려는 곳이라 여겨, 주위의 군사를 예속시켜 안음현감 곽준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이때 적군이 공격해 오니 곽준은 수성(守城)의 계책을 세우며 성을 보수하는 등 전력을 다하였다. 성 안에는 함양군수 조종도(趙宗道)와 김해부사 백사림(白士霖) 등이 백성들과 합세하여 성을 지킬 것을 굳게 결의하였다.
적들은 성을 포위하여 가토는 남쪽에서, 나베시마(鍋島直茂)는 서쪽에서, 구로다는 동쪽에서 일제히 공격을 가하였다.
성 안에서는 곽준ㆍ조종도를 비롯한 장수들과 백성들이 활을 쏘고 돌을 던지며 적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적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기미를 알아차린 백사림은 가족을 성 밖으로 피신시킨 뒤 성문을 열고 도망하였다. 그러나 곽준은 아들 이상(履常)ㆍ이후(履厚)와 함께 끝까지 적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왜군은 고전 끝에 성을 함락시키게 되자 성 안을 수색하면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였다. 뒤이어 왜군은 육십령(六十嶺)을 넘어 진안현을 거쳐 전주로 빠져서 좌군과 합친 뒤 전주성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이 전투는 비록 실패하여 성이 함락되기에 이르렀으나, 적으로부터 성을 지키고자 하는 백성들의 정신력은 대단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