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조경(趙儆) 1541(중종 36) ~ 1609(광해군 1)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척(士傶).

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안국(安國)이며, 어머니는 생원 권세임(權世任)의 딸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ㆍ제주목사를 거쳐, 1591년 강계부사로 있을 때 그곳에 유배되어 온 정철(鄭澈)을 우대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방어사가 되어 황간ㆍ추풍 등지에서 싸웠으나 패배, 이어 김산(金山)에서 왜적을 물리치다 부상을 입었다. 이해 겨울 수원부사로 적에게 포위된 독산성(禿山城)의 권율(權慄)을 응원, 이듬해 도원수 권율과 함께 행주산성에서 대첩을 거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되었다. 행주산성에서의 승리로 한양을 탈환할 수 있었고, 도성서도포도대장(都城西都捕盜大將)으로 임명되었다.

1593년 《기효신서(紀效新書)》의 신진법(新陣法)을 명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의 소청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새로 편제된 훈련도감당상을 겸하고, 이듬해 훈련대장이 되었다. 그뒤 동지중추부사ㆍ함경북도병사ㆍ훈련원도정ㆍ한성부판윤을 거쳐 1599년 충청병사ㆍ회령부사를 지냈으며,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봉되고 풍양군(豊壤君)에 봉하여졌다.
그는 무신으로 사서(史書)를 두루 통하여 고사(古事)에 밝았고 늦게 급제하였으나 명망이 높아 사람들이 모두 대장의 재목으로 기대하였다. 시호는 장의(莊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