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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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호국정신이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여행을 떠나자!
  • 이순신 장군의 관련 유물과 문화재를 통해 임진왜란과 해전의 역사를 알아보는 곳입니다.
이충무공 고택 사진  1

이충무공 고택 사진

  • 지정번호 -
  • 지정일 -
  • 시대 광복이후(光復以後)
  • 규모/양식 세로(세로) : 41 cm / 가로(가로) : 61 cm
  • 소재지 경남 진해시 앵곡동
  • 소유자 해군사관학교박물관
충무공 이순신은 1545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32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무사(武士)가 되었다.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에 전라좌수사가 되었으며, 이 때 그는 장차 일본의 침입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당대무비(當代無比)의 전선(戰船)인 거북선을 제작 건조하였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였고, 초기접전에서 조선의 2개 함대 곧 경상좌, 우수군이 궤멸되었다. 그러나 전라좌수군 곧 이순신함대가 출동하면서부터 조선함대는 승승장구하던 일본함대를 격파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1592년 한 해 동안 10회의 해전에서 모두 승리하였으며, 그 결과 일본군의 전진을 차단할 수 있었다. 1593년 8월 조선정부는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임명하였다. 이후 4년 동안 그는 최후의 결전에 대비하며 함대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1597년에 통제사 직위에서 해임되었고 감옥에 갇히었다. 한편 이순신이 없는 조선함대는 원균의 지휘 하에 1597년 7월의 칠천량해전에서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고, 결국 괴멸되었다. 위기에 처한 조선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이순신을 재기용하였고, 그는 12척의 패잔전선(敗殘戰船)으로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133척의 일본함대를 격파하는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1년 동안 함대 증강에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여 최후의 결전에 대비하였다. 1598년 11월 19일 이순신은 퇴각하는 일본함대와 결전을 벌여 노량해전에서 대승리를 거두었으나 자신도 또한 전사하였다. 그는 7년 동안의 해전에서 모두 완승을 거두어 일본의 조선정복 야욕을 분쇄하였고, 조국을 멸망의 위기로부터 구출하였다. 1643년에 조선정부는 그에게 충무공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이 사진은 충남 아산시 염치면 백암리의 현충사(顯忠祠) 경내에 있는 이충무공의 옛집으로서 1970년대의 성역화 단장 이전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