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의 규모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크기에 대한 자료는 앞서 언급했듯이 여러 문헌자료를 통해 추론해본다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1615년 권반이 작성하여 반포한 절목의 치수와 그로부터 70여년이 흐른 뒤인 당시(1687) 선박 크기가 제시되어 있는 『비변사등록』숙종 13년 1월 1일 기사에 의하면,

“領議政 金壽恒이 狀啓를 올린바 ... 忠武公李舜臣이 式을 定한 바의 것으로서... 乙卯年(1615년)에 巡檢使 權盼이 三南地方의 水軍을 按檢할 때 統制使와 여러 將帥와 늙은 卒兵들과 상의하여 한 배(船)에 싣는 軍器와 什物과 戰船의 길이와 너비를 일일이 勘定하여 狀啓를 써서 올린 후 節目을 반포하였는데, 統制使와 水使가 騎船하는 大船의 本板은 즉, 14把로 詳定하였으나 지금은 半把가 늘었고, 次船은 즉, 11把로 詳定하였으나 지금은 1-2把가 늘었고, 之次船은 즉, 10把 혹은 9把半으로 詳定하였는데 지금은 2-3把가 늘어나 그 크기가 점점 늘어났다. 1615년에 巡檢使가 亂이 지난 20년 후 그때에 利害關係를 따져서 詳細한 節目을 磨練하였다.”(《비변사등록》41책, 숙종 13년 1월 1일조)

이 내용은 임진왜란 당시 통제사나 수사가 승선한 대형 전선은 14파였으나 14파 반으로 커졌고, 그 다음 중형 전선은 11파에서 12~13파로 커졌으며, 마지막 소형 전선은 10파(9.5파)에서 12~13파(11.5~12.5파)로 커졌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이 중형 전선을 개장한 것인지 아니면 소형 전선을 개장한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다만 거북선 전체 길이의 가장 기준이 되는 저판장의 길이를 비교하면 김재근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의 복원 거북선은 1795년 당시 즉, 『충무공전서』에 나오는 거북선 치수를 근거로 제작한 것이다.

기존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남천우는 『충무공전서』의 “좌우 현판은…일곱째 판자에 이르러선 길이가 113척이 되며…”의 내용을 토대로 거북선의 추정치수를 113척으로 하였으며, 최두환은 1795년식 귀선의 치수를 113척로 산출한 뒤 이를 토대로 1592년식 귀선의 길이를 93.4척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김재근은 『충무공전서』에 기술된 내용을 토대로 1795년식 귀선의 길이를 113척으로 산정하였다.

가장 최근의 연구 성과를 낸 이원식은 문헌사료 여러 곳에 산재하여 있는 거북선에 관한 기록인《亂中日記草》,《壬辰狀草》,《李忠武公全書》,《備邊司謄錄》,《영조실록》,《湖左水營誌》,《旅菴全書》,《李忠武公舜臣宗家龜船圖》등을 토대로 하여 임진왜란 때의 거북선이 정조때의 거북선에 비해 크기가 적었음을 논증하고 이를 토대로 1592년식 거북선의 구조, 형태, 주요치수를 추정하였다. 그 결과 1592년식 귀선의 추정치수를 84.1척, 1795년식 귀선의 추정치수를 109척으로 하였다.

참고로 3층 구조설을 주장하는 남천우ㆍ최두환, 2층 구조를 주장하는 이원식ㆍ김재근의 연구 성과에 나타난 거북선의 주요 구조와 치수를 『충무공전서』의 내용과 비교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거북선의 주요 구조와 치수
구분 충무공전서 3층구조 2층구조
남천우 최두환 이원식 김재근
1592ㆍ1795 1592 1795 1592 1795 1795
전체장 113 113 93.4 113 84.1 109 113
전체광 37.5 25.5~28.9 30~34 29 30 30~32
전체고 23 16.6~18.31 19.5~21.5 17.5 19.5~21.5 19.5~21.5
선체장 98 76.4 90 68 90 90
저판 저판조수 10개 10개 10개 10개 10개 10개
저판장 64.8 64.8 55 64.8 50 64.8 64.81
저판두광 12 12 10.2 12 9.3 12 12
저판요광 14.5 14.5 12.3 14.5 11.2 14.5 14.5
저판미광 10.6 10.6 9 10.6 8.2 10.6 10.6
저판 후 - 1.0 1.0 0.79 1.0 -
현판 현판조수 7개 7개 7개 7개 7개 7개 7개
현판최
하판장
68 57.7 68 - 68 68
현판최
상판장
113 93.4 113 - 113 113
현판요고 7.5 5.5 6.4 7.5 6.15 7.5 7.5
현판두고 4 4 - 7.5 - 7.5 7.5
현판미고 7.5 7.5 - 7.5 - 7.5 7.5
현판후 0.4 0.4 0.4 0.4 - 0.4 0.4
노판 노판조수 가로4개 세로7개 - - - 4판 -
노판하광 12 12 - - - - -
노판상광 16 - - 선두광 13.1 선두광 17 -
노판고 4 4 - - 선두고 7.8 선두고 10.1 -
축판 축판조수 가로7개 - - - 7판
축판하광 10.6 10.6 - - - 10.6 10.6
축판상광 14.5 14.5 - - 선미광 11.2 선미광 14.5 14.5
축판고 7.5 7.5 - - 6.15 선미고 8.3 7.5 선미고 10.8 7.5
상부두광 14.5 16 - - - 선두광 17 -
상부요광 22.5(24) 20.4~23.8 24~28 22.6 29.3 24~28
상부미광 14.5 15.3 - - - - -
좌우 미익 15 - - - 10.6 -
거북선의 주요 구조와 치수2
구분 충무공전서 3층구조 2층구조
남천우 최두환 이원식 김재근
1592ㆍ1795 1592 1795 1592 1795 1795
저면전장 98 - - - - -
전장구간수 14칸 - - - - -
각구간장 7 - - - - -
난패고 4.3 4.3 4.3 4.3 - 4.3 4.3
두광 29 - - - -
요광 34.5 상장 너비 25.5~28.9 상장 너비 30~34 30 상판부 30~32 상판부 30~34
미광 22 - - - - -
층고 7.5 - - - - -
2층 저면광 37.5 - - - - -
2층고 8 - - - - -
여장높이 - 2.6 2.6 - - -
포혈 본체 노판 좌우 각1개(2개) - - - - -
1층 귀선전면2개 좌우22개 좌우복판 각 12개 귀선전면 2개 좌우 각 22개 - 좌우 각 10개 좌우 각 6개 귀선전면 2개 좌우 각 22개-10개 -
2층 귀선전면 2개 좌우 각 12개 - - - - -
공간 본체 - - - 휴식 공간 및 화장실, 무기고
1층 휴식공간ㆍ무기고 24개 제14구간 주방ㆍ변소 - - - - -
2층 제 5구간 좌우 각 1개 제12구간 좌우 각 1개 - - - - -
두면2개 좌우 각 12개 두면 2개 좌우 각 12개 - - - 두면2개 좌우 각 12개 -
가목수 15개 - - - - -
노수 10개 14~20개 14~16개 16~20개 12~16개 16~20개 16~20개
인원 120명 96명 104명 - - 80~100명
위치 12가목 - - - - -
타목전장 26 - - - - -
타장 12 - - - - -
타폭 10 - - - - -
타혈 1.2 - - - - 1.2 -
위치 제 4가목 제 8가목 - - - - -
범주협관 간격 1.5 1.5 - - 1.5 -
등판 좌우개판 사이의 간격 1.5 1.5 1.5 1.5 - - 1.5
좌우 각 개판조수 14~15 - - - 11판 -
포혈위치ㆍ개수 제4판 - - - 좌우 각 6~12 -
덮개 높이 - 5 5 - - -

결론적으로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 치수는 중형일 경우 11파이고, 소형 전선을 개장했을 경우는 10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그러라 저판장을 기준으로 10파와 11파의 차이로도 저판의 길이가 5자, 약 1.5m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거북선 전체 크기까지 생각한다면 적지 않은 차이라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이순신 종가 귀선도3)에 기술된 ‘귀선송’에는 “전라좌수영에서 거북배를 꾸몄으니, 본판장의 길이는 10파요, 배의 너비는 약 5파요, 선체의 길이는 13파요, 원문(방패문)은 26이요, ...”4) 라는 내용이 나오고 있어 임진왜란 당시의 저판장을 10파(50척)으로 계산하여 전체 길이를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따라서 금번 제시하는 거북선의 크기는 10파로 설정하여 1795년의 거북선을 축소 비율로 적용한 이원식의 치수를 적용하였다.

다음은 배의 전체 넓이에 대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기존 연구자들의 산정 치수는 다음과 같다.

거북선 전체너비 치수(단위:척)
표 1). 거북선 전체너비 치수(단위:척)
구분 남천우 최두환 이원식 김재근
1592ㆍ1795 1592 1795 1592 1795 1795
전체너비 37.5 25.5~28.9 30~34 29 30 30~32

남천우는 도해사신선 설계도를 바탕으로 37.5척으로 추정하였고, 이원식은 1795년식 귀선을 30척으로 추정한 뒤에 이를 토대로 임진왜란 때의 거북선의 너비를 비율대로 축소 산정하였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원식의 판단한 내용이 타당하고 판단되어 이를 적용하였다.

거북선의 내부 구조와 관련이 있는 배의 전체 높이에 대해 기존 연구자들의 산정 치수는 다음과 같다.

거북선 전체높이 치수(단위:척)
표 2). 거북선 전체높이 치수(단위:척)
구분 남천우 최두환 이원식 김재근
1592ㆍ1795 1592 1795 1592 1795 1795
전체높이 23 16.6~18.31 19.5~21.5 17.5 19.5~21.5 19.5~21.5

이 부분에서는 거북선의 내부구조와도 연관되어 있어 남천우와 최두환의 경우에는 3층 구조의 거북선을 주장하고 있고, 이원식과 김재근의 경우에는 2층 구조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남천우와 최두환이 산정한 높이가 더 크다고 하겠다.

『충무공전서』에는 선체의 높이와 너비 등 주요 치수는 분명치 아니하다. 舷欄에서부터 牌欄까지의 높이는 4.3척이라는 내용만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 치수를 근거로 김재근 교수를 비롯한 거북선 연구가들은 나름대로 높이를 추정했지만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하겠다. 금번 거북선 복원은 임진왜란 당시 군인의 키를 근거로 거북선의 높이를 추정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대체로 임난 당시 좌의정이었던 유성룡은 평안도 군사 408명명의 키를 그의 문집에 적어 놓았다. 영변부 진관 관병 408명의 평균 키는152.7cm 였다.5) 또 최근에 토지박물관에 소장된 숙종대의 병적기록부를 보면 제주 속오군적에 오른 병사들의 평균 신장이 146.54㎝이라고 나와 있다.

당시 선장(船匠)들은 당시 군인의 키를 근거로 거북선의 높이를 재단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내부 높이를 추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수가 활을 쏜다고 했을 때 필요한 높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 당시 병사들이 활을 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 있는데, 이것은 김홍도가 그린 활쏘기 그림이다. 이 그림을 분석해보면 활의 쏘게 되는 경우에 정상적인 키보다 25~30cm 이상 높아짐을 알 수 있다. 결국 『충무공전서』에 언급된 4.3척으로는 내부에서 병사들이 활동할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병사들의 키에도 못미치기 때문이다.

1592년 거북선 외부 복원모형

따라서 금번 복원에서는 거북선의 2층 높이는 병사들의 평균 신장에 활을 쏠 경우에 필요한 최소 높이를 고려하여 재산정하였다.

평균신장 152.7cm + 활쏘기25cm + 패란두께 36cm(1.2척) = 210(10cm이하절사)

또한 3층의 경우에도 같은 치수를 적용하되 거북선의 높이가 높아짐에 따라 무게 중심이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지 위하여 최고점을 2.1m로 하여 곡면을 형성하도록 했다.

1592년 거북선 복원 단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