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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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호국정신이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여행을 떠나자!
  • 임진왜란 관련 행사나 승첩지 등 여러분의 역사의 현장체험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명량대첩비(鳴梁大捷碑) 1

명량대첩비(鳴梁大捷碑)

  • 지정번호 보물 제503호
  • 주소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 1186-7 
  • 전화번호
진도를 강건너처럼 바라 볼 수 있는 명량해협에 면한 해남의 남단 화원반도 접안지에 위치하고 있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의 명량대첩(鳴梁大捷)을 기념하여 1685년(숙종11)∼1688년(숙종 14)에 걸쳐 세운 비이다. 1597년(선조 30) 9월 이순신이 원균(元均)의 무고로 통제사에서 물러났다가 원균의 패전으로 다시 기용되어 우수영 월경인 진도 벽파진에 수영(水營)을 옮기고 우수영∼진도간의 급류를 이용하여 몰려오는 133척의 왜적함대를 불과 12척의 전선(戰船)으로 일본군의 선단을 격파하였는데 이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명량대첩은 이순신이 재기한 직후 큰 기적을 올린 대회전(大會戰)으로 충무공이 세운 전공의 중흥이라 일컬으며, 충무공의 용병과 지리(地理)에 뛰어남은 귀신도 가동케 하였으며, 공의 임난토적(臨難討賊)에 있어 결책출기(決策出奇)함은 옛 명장들도 이에 미치지 못할 뿐아니라 충의의 분발은 해와 달을 꿰뚫는다고 하였다. 명량대첩비는 조선시대 석비(石碑)의 일반형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방형(方形) 지대석(地臺石)과 문양이 조각된 장방형(長方形) 비좌(碑座)를 갖추고, 그 위에 신석(身石)을 꽂고 운용문(雲龍紋)을 조각한 장방형 옥개석을 얹었다. 비명은 '유명조선국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有明朝鮮國統制使忠武李公鳴梁大捷碑)이며 서포 김만중(金萬重)이 쓴 전액(篆額)은 '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이다. 1685년 홍문관대제학 이민서(李敏敍)가 문장을 썼고, 글씨를 쓴 사람은 판돈령부사 이정영(李正英)의 해서이며, 제액전서는 홍문관대제학오위도총제부도총관 김만중(金萬重)이 했다. 끝부분에는 「승정후을축삼월일서가선대부행전라우도수군절도사 박신주무진삼월일입감역출신한시달(崇禎後乙丑三月日書嘉善大夫行全羅右道水軍節度使朴新胄戊辰三月日立監役出身韓時達」이라 하여 비문을 쓴 일자와 비석을 세울 일자를 명기하였는데 숭정후을축은 숙종 11년(1685)이며 비를 세운 해는 그 보다 3년 뒤인 숙종 14년(1688)으로 명량대첩이 있은지 91년이 되는 해이다. 비문은 만력 25년 정유(1597년) 9월에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우수영 건너편인 진도 벽파정 아래에 진을 설치하여 바다의 급류를 이용, 일본군의 선단을 격파한 상황을 자세히 기술한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전공비는 남해노량, 고하도(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39호), 여수(좌수영대첩비(보물 제571호)), 통영, 아산 등 여러곳에 세워졌으나 일제강점기에 박해로 그 일부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비도 역시 같은 피해를 받아 한때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옮겨졌던 것을 1945년 해방 이후 우수영 유지들에 의해 원래 세워졌던 장소로 회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