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포와 야죽불

신성포와 야죽불

신성포 야트막한 산 위에 있는 성은 한국에서 쌓아 놓은 것이었는데 우리 수군은 왜놈들에게 밀려서 거기를 뺐겠다. 그래서 왜놈들이 거기서 진을 친 것이었다. 그 때 이순신 장군은 하동의 대를 베어다가 짚을 펴놓고 짚 둥치 안에 대를 다발다발 넣어서 둥그렇게 묶어 야죽불을 만들었다. 노량 바다쪽에서 신성포로 들어오며 불을 내논께 대 매듭 튀는 소리가 총소리보다도 무섭거든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가 불이 붙어서 튀니까 "조선도 이렇게 무기가 많구나 우리 여기 있다가는 죽겠다"고 그것에 놀라서 그놈들이 다 달아나 버렸다. 그래 가지고 남해 노량강 거기서 빠져 나가려고 할 때 이장군은 남해섬 저 건너 어디가 대기해 갖고 있었던가 적진으로 오다가 그 자리에서 그냥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남해 이내기에서 죽었는데 남해에서 진을 치고 있으면서 그 곳의 지명을 물었더니 이내기라고 했다. 이순신이 자기가 죽을 자리라고 했다. 이내기에 들어가 갖고 "여기서 죽을 거다"고 했다. 망마산 가면 나무가 하나 서 있다. 이순신이 훈련하면서 쓰던 지휘봉이 그 때 저 나무다. 그 때 그 나무를 꼽으면서 "이 나무가 살 면은 내가 살 것이고 만약에 이 나무가 죽으면 내가 죽을 것이다"고 했다.(망마산 건팽나무)

왜놈이 쳐들어오는 길목에 철모를 놔두고 조선군인은 그것과 똑같이 생긴 바가지를 쓰고 다녔다. 왜놈들이 와서 보니까 한국 사람들이 전부 철모를 쓰고 다녔다. 길가에 철모가 있어 다섯, 여섯이 들어도 들을 수 없는 것을 한국 사람들은 한 사람씩 쓰고 다녔다. 조선 군대가 장사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이려고 그렇게 한 것이었다. 사람의 형용을 만들어 사람이 있는 것처럼 짚 둥치를 해 놓고 왜놈들이 거기에다 활을 쏘면 화살을 빼어 갖고 되쏘고 했다. 의병들이 그런 전술을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