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철수와 뇌물에 흔들리는 명나라군

노량해전의 동기세
  • 임진왜란 막바지에 조명연합군과 일본군의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고 노량 해전의 원인과 이순신 장군의 사람됨을 살펴보자.

일본군의 철수와 뇌물에 흔들리는 명나라군

노량해전을 앞두고 명나라와 일본의 속셈과 이순신 장군의 입장을 비교해 보자.
약간의 휴전기간을 거친 일본군은 철수작전을 시작하였다.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군과 남해의 소오 요시모토군,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군은 11월 10일 창선도에 집결하여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철군의 움직임을 눈치 챈 조선군과 명나라군은 일본군을 더욱 심하게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노량해전 지도 노량해전 지도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은 일본군이 철수하는 길목인 순천 나로도를 명나라 제독 유정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는 40명의 인질을 서로 교환하는 조건과 온갖 뇌물로 싸우지 않고 일본군이 물러간다는 약속을 제독 유정과 맺었다.
처음에 일본군은 철군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명나라 제독 유정은 싸우지 않고 성을 차지하는데 목적이 있는 듯 했고, 일본군 역시 명나라 침략을 포기하고 무사히 본국으로 철군하는데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명나라 수군을 이끌고 있던 도독 진린은 제독 유정의 생각과는 달리 이번 기회를 이용해 전공을 높이 올리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군이 제독 유정의 허락을 얻어 철수한다는 정보를 듣고 도독 진린은 이순신 장군과 이 사실을 의논하였다.

1598년 11월 13일 일본 고니시 유키나가는 철수를 위해 왜교성을 빠져나오다 장도에서 조명연합수군의 공격을 받고 다시 돌아갔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육지보다 바다를 통한 철수가 유리한데, 이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자 이번에도 많은 뇌물을 도독 진린과 이순신 장군에게 보내며 탈출로를 무사히 확보해 달라고 하였다. 뇌물에 넘어간 도독 진린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구원 요청 연락선이 장도를 빠져나가는 것을 눈감아 주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 장군은 머지않아 왜교성의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하기 위해 일본 전선들이 이곳으로 몰려 올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것은 군관 송희립과 해남 현감 유형과도 같았다.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양옆에서 공격을 받게되어 불리하게 되니 진열을 큰 바다 가운데로 옮기고 싸울 계획을 세웠다.
이 전투 작전 계획을 도독 진린에게 알리자 도독은 고니시 유키나가로부터 받은 뇌물 때문에 처음에는 이순신 장군의 계획에 따를 수 없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러나 오직 나 라를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의 강한 신념과 자기의 무지와 실수가 이러한 상황을 가져왔음을 자책하며 이순신 장군의 계획에 따르기로 하였다. 이제 노량해전은 임박해 오고 있었다.
도독 진린과 제독 유정, 고니시 유키나가 역할을 맡아서 당시 상황을 역할극으로 꾸며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