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에 기록된 노량해전 당시 모습

문헌속의 노량해전
  • 지금까지 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그러면 그 당시 문헌 에는 어떻게 노량해전을 기록했는지 알아보자.

문헌에 기록된 노량해전 당시 모습

신흠의 상촌집(인조때 영의정 1566~1628) 상촌집 권56

일본군이 이순신 장군의 배를 몇 겹으로 에워싸자 도독 진린이 우리나라 배에 바꿔탄 뒤 포위망을 뚫고 곧바로 들어와 구원하였다.
적이 또 도독 진린의 배를 포위하는데, 두 명의 일본군이 뱃머리로 뛰어 오르자 명나라 군이 삼지창으로 가슴을 찔러 바다에 떨어뜨렸다.
일본 전선이 고기비늘 처럼 도독 진린의 배 아래로 모여들자 도독 진린이 닻을 내려 배를 멈추게 하였으며 왕원주와 복일승 두 장수 역시 우리나라 배로 갈아탄 뒤 도독 진린의 배를 가운데에 두고 보호하게 하였다.

도독 진린이 군사들로 하여금 함성을 지르고 대포를 쏘게 하자 적들도 위를 쳐다보고 조총을 쏘아대었다. 이때 도독 진린이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방패에 의지하고 엎드려 있게 하였는데, 적들이 이를 보고는 한꺼번에 칼을 빼들고 배 위로 올라오자 명나라 군이 장창을 가지고 낮은 자세에서 찔러대니 물에 떨어져 죽은 왜적의 숫자가 천을 헤아렸다. 여러 장수들도 죽을 힘을 다 내어 육박전[肉薄戰적과 직접 맞붙어서 총검으로 치고받는 싸움]을 벌였다.

얼마 뒤에 도독 진린이 쇠방울을 흔들어 군사를 거두었는데, 배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조용해지자 적이 의심하여 퇴각하였다. 이에 명나라 군이 높은 위치를 이용 하여 분통을 적선에 흩뿌리니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면서 일본 전선 수백 척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온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멀리서 도독 진린이 포위된 것을 보고는 역시 포위망을 뚫고 진격하면서 힘을 합쳐 혈전을 벌였다. 등자룡의 배 안에서 불길이 치솟자 군사들이 불을 피하느라 소란해진 틈을 타서 왜적이 등자룡을 죽이고 그 배를 불태웠다.
일본전선 중에 매우 크고 높다랗고 위에 붉은 휘장을 친 전선 한 척에서 황금 갑옷을 입은 세 사람이 전투를 독려하고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집결시켜 그 배를 집중공격하며 황금 갑옷 입은 한 사람을 활로 쏘아 맞추자 적선들이 도독 진린을 놔두고 그 배를 구원하러 갔다. 이 때문에 도독 진린의 군사가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여러 부대와 세력을 합쳐 호준포를 쏘아 그 배를 산산조각내자 나머지 적들이 혼비백산하였는데, 그 결과 거의 모든 배를 불태울 수 있었다.
호준포 호준포
‘ 상촌집’에 기록된 노량해전의 전투 상황을 그림으로 나타내어 보자.
조경남의 난중잡록(임진왜란시 의병장 1569~1641) 난중잡록3
… 한 번 바라소리가 울리니 대포 소리와 북소리가 함께 진동하고 조선군과 명나라군 양군이 갑자기 일어나 좌우에서 공격하니 화살과 돌이 섞여 떨어지고, 불이 붙은 섶을 마구 던지니 왜선의 절반이 불에 탔다.
적병은 목숨을 걸고 혈전하였으나 형세를 지탱할 수 없어 바로 물러가 관음포로 들어가니 날이 이미 밝았다.

이순신 장군이 친히 북채를 잡고 먼저 올라가 추격하며 죽이는데 적의 군사들이 배 꼬리에 엎드렸다가 이순신 장군을 향하여 일제히 포와 총을 쏘아 이순신 장군은 총알에 맞고 인사불성[人事不省제 몸에 벌어지는 일을 모를 만큼 정신을 잃은 상태]이 되었다.
급히 호위군사에게 명하여 방패로 몸을 지탱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비밀로 하여 발설하지 못하게 하였다.
노량해전도 노량해전도
조경남의‘ 난중잡록’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의 총알을 맞은 당시의 모습을 그려보자.
이분의 행록 (이순신 장군 조카 1965~1628) 행록 이충무공전서 권9

19일 새벽에 이순신 장군이 한창 전투를 독려하다가 문득 지나가는 탄환에 맞았다.
“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단 말을 내지 마라.”
공은 말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이때에 공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이 활을 쥐고 곁에 섰다가 울음을 참고 서로 하는 말이
“ 이렇게 되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
“ 그렇지만 지금 만일 곡성을 내었다가는 온 군중이 놀라고 적들이 또 기세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 그렇다. 그리고 또 주검을 보전해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 그렇습니다. 전쟁이 끝나기까지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서는 곧 주검을 안고 선실로 들어갔기 때문에 오직 공을 모시고 있던 종 금이 와 회, 완 세 사람만이 알았을 뿐 친히 믿던 부하 송희립도 알지 못했었다.

* 이 부분은 59쪽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표시한 내용과 차이점이 있다. 기록한 시점과 기록자의 견해가 다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자신보다 나라를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나의 생활에 본보기로 삼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