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에 전해오는 관인 발견 유래담

진주시에 전해오는 관인 발견 유래담

1747년(영조 23) 남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한 어부가 철인 하나를 건졌는데, 앞면에는 '慶尙右道 兵馬節度使印(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이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萬曆 十三年 月 日造(만력 13년 월 일조)'라 새겨져 있었다. 당시 병사 최진한(崔鎭漢)은 이 사실을 조정에 장계로 올리면서 이것이 1593년(선조 26)에 순국한 최경회의 직인이라고 증언하였다.

영조는 이 철인을 보고 몹시 감격해하며 동으로 인갑을 만들고 친히 관인명을 은으로 발라 진주 본영으로 보내며 잘 보관케 하였다. 이후 이 철인은 진주영의 보장물이 되었는데 영중에 큰 일이 있을 때면 반드시 밤에 울었다고 한다.

1839년(헌종 5) 운주당(運籌堂)이 실화로 불탔을 때 병사가 불에 타 희생되는 사건이 있었으나 잿더미 속에서 되찾을 수 있었고, 1899년(고종 36) 속칭 환갑(還甲)불이 났을 때도 운주당은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철인만은 중건 때 다시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정면에서 바라보는 운주당 전경 운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