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성전투

다대포성전투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고니시 유키나가 군(軍)은 기세를 타고 인접 지역의 서평포와 다대포진을 공격하였다. 두진영의 전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서평포와 다대포가 모두 지금의 부산 영역이었지만 부산포보다 군사적 지위가 낮았고 고을규모도 작았으며, 외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1952년 4월 14일 부산진성이 함락된 후 적군의 다수 병력은 동래로 향하고, 나머지 소수의 병력은 다대포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조선군의 저항으로 격퇴를 당하자 15일 일본대군의 공격을 다시 받아 다대포성은 함락되었으며, 첨사 윤흥신(尹興信)과 동생인 홍제 등 군, 관, 민은 최후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일본군들은 상륙이후 경상도 해안지역의 요충인 부산진과 다대포진을 점령함으로써 조선군의 해안 방어세력을 제거하고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